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 16세 (문단 편집) === 무능한 군주는 아니었지만 === [[프랑스 혁명]]을 막지 못한 만큼, '''무능하고 어리석은 인물'''로 흔히 평가되고 있다. 사실 무능한 군주란 이미지도 어찌보면 재평가받은 것이, 90년대 학습만화 같은 것을 보면 단순히 무능한 왕이 아니라, 군대와 비밀경찰을 동원해서 국민들을 탄압하는 사악하고 영리한 [[폭군]]으로 등장했다. 당연하지만 루이 16세가 이런 군주였다면 단두대 갈 거 없이 혁명 당일에 맞아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사실 이미지처럼 정말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폭군도 아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또 정설이 되었다. 프랑스 최초로 전기를 일으키는 기계를 들여왔고 [[라틴어]]를 비롯한 [[다언어 구사|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지리, 철학, 수학은 물론 [[천계제|시계나 가구를 만드는 시시한 취미]]라고 평가된 것도 과학에 대한 그의 조예를 보여주는 증거로 보인다. 오늘날에야 시계는 흔하디 흔한 걸로 평가받지만, [[쿼츠 시계]]가 없던 당시에 시계는 고도의 기술력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 기계공학적인 면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시계를 통해 나타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루이 16세의 시계 제작에 대한 관심은 달리 말하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여전히 [[기계식 시계]] 형식을 따르는 고가의 무브먼트 손목시계들은 무진장 비싸고 엄청난 기술력이 들어간다.] ||[youtube(42CYEOi2QiQ)]|| || 단두대의 칼날 문제를 지적하는 루이 16세[*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1989년 영화 <프랑스 혁명>의 한 장면] || 근데 이게 재평가되면서 또 생각해 봐야 되는 지점이, 이 시계·자물쇠 취미가 그렇게 시시한 것이 아닌 만큼 요즘 부자들이 하는 어마무시한 규모의 덕질과 유사하게 거대한 취미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책상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게 아니라, 궁전 안에 꽤 대규모의 대장간을 마련해놓고 즐기는 본격적인 취미였다. 흔히 '자물쇠가 취미'라고만 들으면 생각나는, 왕실에 걸맞은 사치를 부리지 않았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위에 언급했듯이 당시로선 첨단 기술을 동원하는 작업이어서 비용 자체도 상당히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21세기로 치면 왕이나 대통령의 취미가 로봇이나 스마트폰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인 상황과 비슷하다. 차라리 로봇이나 스마트폰은 차라리 국가 기술 발전에 우리 왕/대통령이 이만큼이나 관심을 갖고 있다는 홍보거리나 되지 자물쇠는... 프랑스 왕실 일화 또는 '''야사에 따르면''' 현존하는 [[단두대]] 칼날도 루이 16세가 새로이 디자인한 것이었다. 원래 단두대의 칼날은 반월형이었는데, 루이 16세가 그 모델을 보고는 "'''반월형의 칼날은 목뼈에 걸려서 사람이 쉽게 죽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칼날을 직선형에 대각선으로 세워야 고통 없이 보낼 수 있다."며 칼날을 수정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그는 자기가 개량한 단두대에서 참수당한다.[* [[단두대]]를 개발하자고 법안을 제출한 기요탱 의학박사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는 낭설이 있었고(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편에도 이 설이 잘못 인용되어 있을 정도로 나름 유명한 낭설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제안한 단두대에 자신이 죽었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기요탱 박사는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했다. (애초에 기요탱 박사는 사형제 폐지론자로, 그래도 사형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면 당시 기준으로 그나마 죄수들이 덜 고통스럽게 죽게 하자고 단두대를 고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두대의 발명자는 단두대에서 사형당했다'는 말의 주인공은 사실 루이 16세일 수도 있는 것.''' 참고로 아무리 사형수라도 좀 곱게 죽여 주자 혹은 명예롭게 죽게 해 주자는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었다. 현대에도 사형 집행을 하는 나라 중 인권이 아무리 시궁창인 나라라 해도 적어도 사형수만큼은 일반적으로는 수면제나 마취제 투여 등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죽을 권리는 준다.] 그래도 그 덕분에 죽음은 조금 덜 고통스러웠을지도. 그 외에도 영국의 역사가 [[데이비드 흄]]과 만난 경험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손수 번역하기도 하였던 만큼 상당한 지식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리학 등의 학문에도 능통했으며, 가족을 사랑하는 자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치세 때 [[도량형]]을 개혁하기 위해 새로운 단위를 논의하고 제정하는 작업을 착수했는데, 이게 바로 [[국제단위계|SI 단위]], 즉 [[미터]]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현대에는 이 미터법 제정이 루이 16세의 치적으로 꼽히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게, 이 미터법이 프랑스를 넘어서 전세계로 퍼져서 공식 도량형으로 자리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프랑스 혁명]] 그 자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